악법도 법이다 악법도 법이다.'는 말은 아무리 불합리한 법이라도 법의 체계를 지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격언이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받자 제자들을 비롯하여 그를 도우려는 많은 사람이 탈출할 것을 권유했지만,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결국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사람들은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청소년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그를 법정에 세웠지만, 정작 판결을 앞두고 드러낸 본심은 그에게 철학자로서의 언행을 그만두면 무죄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억울한 죽음을 선택하여 국가의 악법을 역설적으로 입증하였다. 만일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를 조금이라도 인정하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더라면..
한밤중이었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튿날 아침 일찍 산 너머 해변에 도착하기 위해 산등성이를 넘었다. '난 배를 탈 작정이다. 그 배들은 바다 건너 다른 곳으로 나를 태워 줄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젊은 시절에 겪었던 고독한 방랑 생활을 떠올렸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산등성이와 봉우리를 올랐던가! 나는 방랑자이며 높은 데를 오르는 자이다. 나는 평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앞으로 어떤 운명이 내게 닥쳐오더라도 거기엔 반드시 고통이 따르리라. 차라투스트라는 우리들의 체험은 결국 자기 자신만을 체험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특별한 인간이라 하더라도 그의 체험은 그가 직접 겪은 것일 뿐이다. 그러니 내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나 자신의 소요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결국 모든 체험의 결과는 각자..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산으로 들어가 동굴 속의 고독으로 돌아갔다. 그는 마치 씨를 뿌리고 난 사람처럼 싹이 트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그가 사랑하는 인간들에 대한 열망과 초조로 가득 찼다. '나에게는 아직도 그들에게 주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고독한 은자, 차라투스트라에게도 세월은 흘러갔다. 차라투스트라의 지혜는 자라고 또 자랐다. 그러던 중 꿈에서 놀라 눈을 떴다. 거울은 가진 한 어린아이가 그에게 가까이 왔다. "오오, 차라투스트라여! 거울 속에 있는 그대를 보라."라고 했다. 거울 속에 보이는 것은 차라투스트라가 아니라, 악마의 찌푸린 얼굴과 비웃음이었다! 그 꿈은 경고였다. 지금 그의 '가르침'은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차라투스트라는 다시 산을 내려갔다. "가장 높은 행복이 ..
숲을 지나던 차라투스트라는 한 성자를 만났다. 몇 년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성자는 차라투스트라에게 예전에는 혐오의 빛이 있었는데, 지금은 맑은 어린아이처럼 맑아졌다고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에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한다고 했다. 성자는 인간들은 어리석으니 아무것도 주지 말고, 굳이 주겠다면, 그들이 당신에게 구걸하도록 하라고 충고했다. 인간들은 은둔자들에게 의심이 많으니 믿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에 성자에게 숲속에서 무엇을 하는지 물었다. 성자는 날마다 노래를 짓고, 신을 찬미한다고 했고 자신에게도 선물을 달라고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제발 그냥 떠나게 해달라고 하였고, 늙은 성자가 숲속에 있으면서도 '신은 죽었다'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에 놀랐다. '신은 죽었다'라는 차라투스트라의 ..
1. 니체와 차라투스트라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는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자로 현대 사회의 문화, 예술 분야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니체는 사유(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기를 원했다. 사유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경우에 따라서 자유주의자가 되기도 했고, 심리학자가 되기도 했고, 예언자가 되기도 했다. 또 오늘날의 개그맨 같은 익살꾼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니체의 사상이 직접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고, 그래서 '실존주의' 철학자로 불리기도 했다.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독일의 뢰켄에서 프로테스탄트목사인 카를 루트비히 니체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알렉산드로스대왕 (Alexandros the Great)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BC382~BC336)와 올림피아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왕으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시킨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하였으면 알렉산더 대왕 또는 알렉산드로스 3세라고 불린다. 그리스의 작가플루타르코스는 "올림피아스가 벼락이 배에 떨어지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다." 또는 "필리포스가 아내의 곁에 있는 뱀을 보았다." 등의 전설적인 이야기로 그의 탄생에 대해 전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어린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대학자로 유명했고 필리포스 2세는 자신의 아들을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들의 스승으로 초빙하였다. 그리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수도인 펠라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 모든 것들이 조화되어 이상적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육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며 특히 무엇보다 먼저 젊은이의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은 정치 제제를 해롭게 한다. 이미 성장하여 시민이 된 사람들보다 앞으로 시민이 될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교육을 잘 받아야 한다. 또한 도시 전체는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으므로 교육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행해져야 한다. 즉 모든 사람이 자기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교육을 아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시킬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공공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교육은 누구에게나 모두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은 보통 읽기..
정치 질서를 파괴하는 원인에 대해 첫째, 모든 준법 행위를 잘 감시하며 특히 하찮은 형태의 불법 행위에 주의해야 한다. 하찮은 형태의 불법 행위는 마치 작은 지출일지라도 계속 되풀이하면 점차 모든 재산을 써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전체 또는 모든 합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찮은 불법 행위를 방지해서 처음부터 말썽을 없애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민중을 속이기 위한 어떠한 책략들도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 셋째, 어떤 나라에 대해 그 정치 체제 안정성의 진정한 원인이 정치 체제 자체의 견고함에 있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지배자들이 참정권이 없는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덕분임을 알아야 한다. 넷째로는, 정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국가의 먼 위..
아리스토텔레스는 계급의 규모는 가능하다면 다른 계급을 합한 것보다 더 강할 정도로 크거나, 적어도 두 계급 중 어느 하나보다는 더 강할 정도로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에 어느 한쪽에 중산층 계급이 가세하면 힘의 균형을 잃게 될 것이고 서로 적대하는 두 극단 중의 어느 하나가 지배적으로 되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국가의 구성원들이 알맞은 재산을 갖고 있는 것이 국가로서는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로 보았다. 만약 어떤 사람들은 재산이 많고 다른 사람들은 재산이 상대적으로 없는 경우, 결과적으로 극단적인 민주주의가 단순한 과두정치로 변질되거나 이에 대한 반발로 참주정치가 생겨날 수 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산층 계급이 높을 경우에는 시민들 사이의 ..
●시민 앞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국가 또는 국가라는 것은 여러 개의 서로 다른 부분으로 이루어진 '전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가를 구성하는 것은 시민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를 논하기 위해서는 시민의 본질을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시민이란, '관직과 법정의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즉, 임기가 일정하지 않는 관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시민을 '어버이가 모두 시민인 사람'으로 정의하고 어버이 가운데 어느 한쪽만 시민인 자는 시민이 아닌 것으로 정의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국가를 처음 만든 사람이나 그 국가에 처음으로 살았던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부당한 절차로 시민이 된 사..